안녕하세요.
오늘은 삼일절입니다. 그냥 공휴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의미와 감사하는 마음을 제대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삼일절이란?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3.1운동을 기념하여 1949년에 제정된 대한민국의 국경일입니다.
3월의 독립운동가
2023년 3월 독립운동가
권애라 / 심영식 / 임명애 / 신관빈
권애라 , 1897 ~1973 , 애국장 (1990)
1919년 3월 1일 서울 한복판에서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시위대를 이뤄 독립만세를 부르며 행진하기 시작했습니다.
3.1운동 첫날 서울에서는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만이 아니라 이화학당, 배화학당, 정신여학교,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만세시위에 참여했고, 또한 평양의 숭현여학교, 숭의여학교, 선천의 보성여학교 학생들도 시위대를 이뤄 만세시위에 나섰습니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3월 3일 개성 최초의 만세시위가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의 주도로 일어났습니다.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은 오후 2시 기도회를 마치고 찬송가를 부르며 거리 행진에 나섰으며, 여학생들은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송도고등보통학교 학생 200여명은 물론 군중이 가세하면서 만세시위는 밤 12시까지 이어집니다. 3월 10일 전남 광주 최초의 시위가 일어났을 때 수피아여학교 학생들도 시위대를 이뤄 독립만세를 부르며 군중들에게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배포했습니다. 3월 11일에는 경남 최초의 시위가 부산 일신여학교 교사와 학생의 주도로 일어났죠.
당시 한국인들은 서울, 평양, 선천, 개성, 광주, 부산 등지에서 여학생을 필두로 여성들이 시위대를 이뤄 만세시위를 벌이는 장면을 보며 강렬한 시대 변화를 절감했다고 합니다. 또한 여성들이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다 검거되고 투옥되어 재판받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과 분노를 안겼습니다. 3.1운동 내내 만세시위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윤치호마저“경찰서에서 구치소로 이감되는 여학생들의 모습이 조선인들의 가슴 속에 증오와 분노의 격렬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고 보았습니다. 여성, 특히 여학생들의 활약과 고초가 사람들을 시위에 나서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했던 것이죠.
이화학당을 다니던 여학생 유관순도 3월 1일 첫날 서울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조선총독부가 임시휴교령을 내리자 독립선언서를 들고 귀향하여 만세시위를 준비했고, 3.1운동 역사상 가장 많은 지역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난 4월 1일에 병천면 아우내 장터의 만세시위를 이끌었습니다. 그해 5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받은 유관순은 경성복심법원에 공소를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재판을 받기 위해 공주감옥에서 서대문감옥으로 이감되었는데, 만세시위를 이끌다 체포되어 투옥된 이들이 그를 맞이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경기 북부 지역인 개성과 파주의 만세시위를 이끌다가 체포되어 투옥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윤희, 권애라, 심영식, 신관빈은 3월 1일 개성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3월 3일 호수돈여학교 만세시위를 모의하고 다음날까지 이어진 만세시위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되어 있었습니다. 임명애는 구세군으로 3월 10일 파주 최초의 만세시위를 주도했습니다.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의 주체로서의 여성의 탄생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내부(8호감방)
권애라, 심영식, 신관빈, 임명애. 유관순과 함께 서대문감옥 여옥사 8호 감방에서 투옥 생활을 함께 했던 4명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3월 초순에 여성 시위대를 이룬 여학생 대부분도 기독교계 여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19세기부터 기독교 선교의 일환으로 여성 교육을 위해 세워진 여학교의 학생들과 교회 활동을 펼치던 여성 기독교인을 주축으로 여성들은 3.1운동을 통해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의 주체로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신여성으로서 3.1운동 이후에도 활발한 현실 참여로 여성운동이 사회운동과 민족운동으로 자리 잡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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